하나님 말씀을 실천하는 장봉혜림재활원 (1997. 잡지 "하늘나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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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이선미 작성일2006-02-08 10:59 조회8,208회 댓글0건본문
□ 1997. 10./ HANULNARA / 16~18면
-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는 장봉혜림재활원
최첨단의 정보화 사회라는 지금에도 단절되고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 중에는 소위 장애인복지시설이란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요즈음 사회(?)와는 분리되어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들이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사회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현장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장애인공동가정(Group Home)' 이란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도입하여 복지시설 장애인들의 사회복귀를 추진하고 있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성인 정신지체인 재활시설 장봉혜림재활원이다.
장애인이란 이유만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 외롭게 살아가는 정신지체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곳, 아무도 관심을 가져다주지 않는 그 곳에서 모든 장애인들의 꿈을 하나씩 실현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장봉혜림원은 인천 월미부두에서 영종도 구읍까지 배로 10분, 구읍에서 삼목까지 버스로 30분, 삼목에서 장봉도까지 다시 배로 40분을 가야하는 곳, 육지와는 멀리 떨어진 섬에 있다.
여느 섬처럼 보이는 것이라곤 바다와 갯펄, 그리고 몇 안되는 촌락의 평화스런 모습,. 이곳에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섬 주민 천여명과 호흡을 같이하며 살아가고 있다.
도시 주민들의 반대와 열악한 재정여건으로 도심지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지 못하고 도서지역에 세워진 장봉혜림원은 설립자인 림병덕 목사가 전쟁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1957년에 경기도 부천시에 세워 운영해 온 ‘소사 성육원’이라는 육아시설을 그 모체로 하고 있다.
그 후 1976년에 육아시설을 정신지체인 재활시설로 전환하여 장애인 복지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그 운영과정에서 사회복귀가 어려운 성인 정신지체인들의 재활시설의 필요성을 느끼고 1985년에 지금의 장봉혜림재활원이 문을 열게 되었다.
도시에서 주민들의 반대가 있었던 것처럼 장봉도에 처음 왔을때에도 주민들의 거센 반대가 있었다. 하지만 임성만 원장을 비롯하여 여러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주민들의 반발을 이겨 낼 수 있었고, 이제는 장봉도 주민들과 함께 정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장봉혜림원에는 현재 100여명의 정신지체인들과 30여명의 직원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들 중 80%는 부모로부터 버려진 무연고 장애인과 영세가정에서 무료로 위탁된 장애인들이며, 나머지 인원만이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일반가정에서 위탁된 장애인들이다.
“이 기관이 없어지게 되는 날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우리 장애인 친구들을 구경거리로 바라보더라도, 그들을 원망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한 과정이 결국 진정한 장애인복지를 이룩하는 일련의 과정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이곳의 직원들에게 듣게되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 현실이 안타까워 이곳의 직원들은 그 아픔들을 이렇게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시설이 없어지게 되기를 바란다는 표현은 단순히 보호,수용의 시설 기능이 다양하게 확대되어야 한다는 희망을 표현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이러한 일반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시각을 바꾸려고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특히 임성만 원장은 이를 위해 각종 세미나에서의 강의를 비롯하여,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서 장애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에 장애인이 존재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장애인들과 자연스럽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임원장은 이와 같이 말하면서 이제는 사회가 변화되어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다.
‘황제이건 농부이건 가정에서 행복한 사람이 진정한 행복한 사람’이라고 괴테는 말했다. 즉 가정의 행복이 최고의 행복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장봉혜림원에서는 정상인들이 누리는 이러한 행복을 장애인들에게도 동참시키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장애인 공동가정(Group Home)'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일반화 되어있는 프로그램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것이다.
벌써 부천시와 인천시에 위치한 일반 아파트에 20여명의 장애인들이 지역사회로 복귀되어 떳떳한 사회성원으로 생활하게 되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이 열악한 우리나라에서는 비용이 많이드는 그룹홈 제도를 일반화시키기 어려운 형편이다. 게다가 장애연금제도가 시행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부담을 장애인 부모만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다.
장봉혜림원은 이렇게 ‘장애인 공동가정’을 통한 사회복귀를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장봉혜림원의 한 공간에서 그룹홈 생활을 연습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Pre-Group Home’을 운영하고 있다. ‘Pre-Group Home’은 아파트 형태로 설계되어 만들어졌다. 방이 다섯 개에 거실, 휴게실, 주방 등 일반 현대식 주택의 구조를 갖추고 사회복귀가 가능한 정신지체인들이 입주해서 기초생활 훈련을 하게 된다.
소수의 장애인들이 가족을 이루어 같은 방을 쓰면서 자기들 스스로 밥과 반찬을 지어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도 하면서 모든 일과를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장애인의 사회통합과 참여’가 선언적인 구호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 ‘물고기를 잡아다 주는 것이 아니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즉, 과정의 교육훈련이 선행되어져야 한다.
장봉혜림원은 이를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장애인들에게 의식주, 보건, 위생을 중심으로 생활서비스 뿐만 아니라, 장애의 경감 및 극복을 위해 물리치료, 언어치료, 작업치료 등의 의료재활서비스, 개개인이 학습능력 및 사회적응능력을 길러 주기 위해 전문적인 특수교육의 실시와 개별 또는 집단지도 프로그램의 운영, 직업적 기초기능을 개발하기 위한 영농, 축산 등의 직업지도, 정서적 안정과 전인적 인격형성을 위해 신앙지도, 리듬합주단, 축구부, 핸드벨 연주단, 선교단 등의 클럽활동을 운영하며 소풍, 수학여행, 현장학습, 학예발표회, 작품전시회, 체육대회, 민속절기행사, 성탄절행사 등 다양한 행사교육 등을 내용으로 하는 기능적인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사회복귀 및 통합을 위해 고아 및 유기아 장애인들의 호적취득, 직업알선, 결혼, 퇴원원생 사후지도, 앞에서 언급한 ‘장애인 공동가정’의 운영 등의 원조적 서비스에도 힘쓰고 있다.
또한 채플시간을 통해 장애인들과 직원들에게 영성을 불러 일으킬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장봉혜림재활원의 운영은 국비 및 지방비의 보조금(운영비의 56%)과 뜻있는 독지가들의 후원성금(운영비의 4%)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국가 보조금에 의해 채용, 배치되는 직원의 정원과 운영 경비가 지나치게 작게 책정되어 있어, 장애인들에 교육훈련 및 사회통합을 위한 원조적 서비스를 실시하기 위해 추가로 채용해야 하는 직원의 인건비와 프로그램 운영 경비를 자체적으로 마련하여야 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독지가들의 후원성금의 변동에 따라 장애인들의 서비스 수준이 안정되지 못하는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 장봉혜림원은 선생님들과 장애인들, 그리고 자원봉사자 및 독지가들이 하나같이 노력한 끝에 이루어졌다. 건축 당시부터 막일을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그들의 손으로 직접 오늘날의 장봉혜림원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
특히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기본 생계비의 50%도 채 안되는 임금을 받고도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이렇게 자신의 이익을 고수하지 않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이들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인물일 뿐만 아니라 실천적인 전문인이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개인차를 인정하며 서로를 섬기며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곳,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히 행하는 곳, 그 곳이 바로 장봉도 혜림원인 것이다.
<박창후 기자>
-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는 장봉혜림재활원
최첨단의 정보화 사회라는 지금에도 단절되고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 중에는 소위 장애인복지시설이란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요즈음 사회(?)와는 분리되어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들이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사회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현장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장애인공동가정(Group Home)' 이란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도입하여 복지시설 장애인들의 사회복귀를 추진하고 있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성인 정신지체인 재활시설 장봉혜림재활원이다.
장애인이란 이유만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 외롭게 살아가는 정신지체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곳, 아무도 관심을 가져다주지 않는 그 곳에서 모든 장애인들의 꿈을 하나씩 실현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장봉혜림원은 인천 월미부두에서 영종도 구읍까지 배로 10분, 구읍에서 삼목까지 버스로 30분, 삼목에서 장봉도까지 다시 배로 40분을 가야하는 곳, 육지와는 멀리 떨어진 섬에 있다.
여느 섬처럼 보이는 것이라곤 바다와 갯펄, 그리고 몇 안되는 촌락의 평화스런 모습,. 이곳에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섬 주민 천여명과 호흡을 같이하며 살아가고 있다.
도시 주민들의 반대와 열악한 재정여건으로 도심지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지 못하고 도서지역에 세워진 장봉혜림원은 설립자인 림병덕 목사가 전쟁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1957년에 경기도 부천시에 세워 운영해 온 ‘소사 성육원’이라는 육아시설을 그 모체로 하고 있다.
그 후 1976년에 육아시설을 정신지체인 재활시설로 전환하여 장애인 복지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그 운영과정에서 사회복귀가 어려운 성인 정신지체인들의 재활시설의 필요성을 느끼고 1985년에 지금의 장봉혜림재활원이 문을 열게 되었다.
도시에서 주민들의 반대가 있었던 것처럼 장봉도에 처음 왔을때에도 주민들의 거센 반대가 있었다. 하지만 임성만 원장을 비롯하여 여러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주민들의 반발을 이겨 낼 수 있었고, 이제는 장봉도 주민들과 함께 정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장봉혜림원에는 현재 100여명의 정신지체인들과 30여명의 직원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들 중 80%는 부모로부터 버려진 무연고 장애인과 영세가정에서 무료로 위탁된 장애인들이며, 나머지 인원만이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일반가정에서 위탁된 장애인들이다.
“이 기관이 없어지게 되는 날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우리 장애인 친구들을 구경거리로 바라보더라도, 그들을 원망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한 과정이 결국 진정한 장애인복지를 이룩하는 일련의 과정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이곳의 직원들에게 듣게되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 현실이 안타까워 이곳의 직원들은 그 아픔들을 이렇게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시설이 없어지게 되기를 바란다는 표현은 단순히 보호,수용의 시설 기능이 다양하게 확대되어야 한다는 희망을 표현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이러한 일반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시각을 바꾸려고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특히 임성만 원장은 이를 위해 각종 세미나에서의 강의를 비롯하여,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서 장애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에 장애인이 존재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장애인들과 자연스럽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임원장은 이와 같이 말하면서 이제는 사회가 변화되어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다.
‘황제이건 농부이건 가정에서 행복한 사람이 진정한 행복한 사람’이라고 괴테는 말했다. 즉 가정의 행복이 최고의 행복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장봉혜림원에서는 정상인들이 누리는 이러한 행복을 장애인들에게도 동참시키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장애인 공동가정(Group Home)'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일반화 되어있는 프로그램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것이다.
벌써 부천시와 인천시에 위치한 일반 아파트에 20여명의 장애인들이 지역사회로 복귀되어 떳떳한 사회성원으로 생활하게 되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이 열악한 우리나라에서는 비용이 많이드는 그룹홈 제도를 일반화시키기 어려운 형편이다. 게다가 장애연금제도가 시행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부담을 장애인 부모만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다.
장봉혜림원은 이렇게 ‘장애인 공동가정’을 통한 사회복귀를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장봉혜림원의 한 공간에서 그룹홈 생활을 연습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Pre-Group Home’을 운영하고 있다. ‘Pre-Group Home’은 아파트 형태로 설계되어 만들어졌다. 방이 다섯 개에 거실, 휴게실, 주방 등 일반 현대식 주택의 구조를 갖추고 사회복귀가 가능한 정신지체인들이 입주해서 기초생활 훈련을 하게 된다.
소수의 장애인들이 가족을 이루어 같은 방을 쓰면서 자기들 스스로 밥과 반찬을 지어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도 하면서 모든 일과를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장애인의 사회통합과 참여’가 선언적인 구호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 ‘물고기를 잡아다 주는 것이 아니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즉, 과정의 교육훈련이 선행되어져야 한다.
장봉혜림원은 이를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장애인들에게 의식주, 보건, 위생을 중심으로 생활서비스 뿐만 아니라, 장애의 경감 및 극복을 위해 물리치료, 언어치료, 작업치료 등의 의료재활서비스, 개개인이 학습능력 및 사회적응능력을 길러 주기 위해 전문적인 특수교육의 실시와 개별 또는 집단지도 프로그램의 운영, 직업적 기초기능을 개발하기 위한 영농, 축산 등의 직업지도, 정서적 안정과 전인적 인격형성을 위해 신앙지도, 리듬합주단, 축구부, 핸드벨 연주단, 선교단 등의 클럽활동을 운영하며 소풍, 수학여행, 현장학습, 학예발표회, 작품전시회, 체육대회, 민속절기행사, 성탄절행사 등 다양한 행사교육 등을 내용으로 하는 기능적인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사회복귀 및 통합을 위해 고아 및 유기아 장애인들의 호적취득, 직업알선, 결혼, 퇴원원생 사후지도, 앞에서 언급한 ‘장애인 공동가정’의 운영 등의 원조적 서비스에도 힘쓰고 있다.
또한 채플시간을 통해 장애인들과 직원들에게 영성을 불러 일으킬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장봉혜림재활원의 운영은 국비 및 지방비의 보조금(운영비의 56%)과 뜻있는 독지가들의 후원성금(운영비의 4%)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국가 보조금에 의해 채용, 배치되는 직원의 정원과 운영 경비가 지나치게 작게 책정되어 있어, 장애인들에 교육훈련 및 사회통합을 위한 원조적 서비스를 실시하기 위해 추가로 채용해야 하는 직원의 인건비와 프로그램 운영 경비를 자체적으로 마련하여야 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독지가들의 후원성금의 변동에 따라 장애인들의 서비스 수준이 안정되지 못하는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 장봉혜림원은 선생님들과 장애인들, 그리고 자원봉사자 및 독지가들이 하나같이 노력한 끝에 이루어졌다. 건축 당시부터 막일을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그들의 손으로 직접 오늘날의 장봉혜림원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
특히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기본 생계비의 50%도 채 안되는 임금을 받고도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이렇게 자신의 이익을 고수하지 않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이들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인물일 뿐만 아니라 실천적인 전문인이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개인차를 인정하며 서로를 섬기며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곳,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히 행하는 곳, 그 곳이 바로 장봉도 혜림원인 것이다.
<박창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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