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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하늘을 벗삼아 살아가는 장애우들 (1998.10월호 "함께 걸음"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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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이선미 작성일2006-02-08 11:17 조회7,6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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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 10월호./ 함께걸음 기사 

바다와 하늘을 벗삼아 살아가는 장애우들

 “인천에서 뱃길을 따라 2시간을 가야하는 작은 섬 ‘장봉도’를 아십니까? 이 곳에 정신지체인 98명이 오순도순 모여서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장봉혜림원’이 있습니다.  지적능력이 낮고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살지 못하는 장애우들은 오늘도 그리움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인 정신지체장애우시설 장봉혜림재활원에서 93년도에 발행된 뉴스레터에는 작은 섬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들의 처지를 이렇게 적고 있다.

‘왜 이런 섬에서 장애우가 생활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은 이곳 직원들이 봉사자나 후원자들에게 가장 빈번하게 듣곤 하는 질문이라고 했다.  사실 인천 월미도에서 배와 버스 그리고 다시 배를 타고 꼬박 2시간이 걸려 도착해야 하는 바닷가의  외딴 섬에 있는 시설에 자원활동을 하러 간다는 사실을 조금은 낭만적으로 생각했던 사람들도 문득 그런 의문이 들 법하다.

그러나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바로 지역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장봉혜림원은 이 곳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장봉혜림원은 1957년 경기도 부천의 ‘소사 성육원’이라는 전쟁고아를 돌보던 보육시설에서 출발한 이 시설은 설립자 림병덕 목사가 1976년부터 장애아 재활시설로 전환하여 부천혜림원을 세우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성인이 됐어도 사회로 독립해 나가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늘어남에 따라 성인시설을 새롭게 운영하게 됐다고 한다. 

그렇지만 설립 당시 극심한 주민들의 반대에 봉착하여, 그 때 부천군에서 현재의 부지를 알선하여 주어 성인 정신지체장애우 시설로 문을 연 것이 1985년의 일이다.

지난 해까지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이루어졌다는 장봉혜림원의 내부 생활환경은 무척이나 쾌적하고 깨끗해 보였다.  특히나 전체 시설생활자들이 열 명 정도씩 하나의 가정을 구성해 거의 독립된 공간에서 생활하도록 한 운영방침도 인상적이었다.  앞으로 넓은 들과 바다가 보이고 시설 전체에 담도 문도 없어 이웃에 있는 주민들과 자유롭게 오가며 지내고 있는 이곳 장애우들의 생활은 더없이 평안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 식구들이 평생 보는 사람들이래야 우리 직원들 뿐”이라는 사회복지사들의 우려는 절실했다.  물론 각종 수련회나 봉사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방문객이 지난 여름에만 1천 5백명이 넘었다고 하고, 주말에도 가족단위의 후원자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을 만큼 장애우들이 외부인들과의 접촉하는 일이 그리 드문 경우는 아니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생활을 같이 하면서 대화를 나눌 사람들을 몹시 그리워하는 장애우들에게는 고작 32명의 직원들과 장기 자원봉사자들이 유일한 말벗이 되고 있는 형편이었다.

 “앞으로 여기 있는 모든 장애인들을 그룹 홈으로 모두 독립시켜 내보내는 것이 꿈”이라는 임성만 원장의 방침에 따라 현재 장봉혜림원은 시설로서는 드물게 여섯 세대의 그룹 홈을 운영하고있기도 하다.  그리고 올 하반기부터 국내에서 처음으로 그룹 홈 입주 전 준비가정 생활 프로그램(프레그룹 홈: pre-group home)‘을 복지부 지원을 받아 시설 내에 운영하고 있다.  다른 시설 장애인들과는 달리 그 프레그룹 홈 식구들은 식당에서 음식을 받거나 직접 만들어서 식판이 아닌 자신의 개인 식기에 담아 먹는 훈련 등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그룹 홈에서 생활하게 됐을 때 필요한 대중교통이나 관공서를 이용하는 방법 등을 익히는 사회적응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기가 여러모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이 곳 장봉도에는 보건지소 한 곳과 농협 출장소, 파출소 지소가 전부다.  버스도 없어 그냥 작은 마을버스만이 섬 이곳 저곳을 운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이런 저런 지역사회의 편의시설을 이용하는 사회 적응훈련 프로그램을 있는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할 예정인데, 토큰을 사서 버스를 타는 법이나 지하철 타는 법을 배우기 위해 두 시간 동안 배와 버스를 갈아타고 나가야 하는 실정인 것이다.

현재 장봉혜림원 원생들은 시서 내에서 직업재활 프로그램으로 송이버섯 재배와 농사, 구슬공예 같은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후 그룹 홈으로 독립해 나가거나 홀로 자립생활을 하는데 필수 요건인 취업을 하기 위한 직업적응훈련 등을 활발히 진행하는 데에도 두 시간씩 걸리는 거리가 또한 적지 않은 장애가 도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장봉 혜림원 사회사업과 고선정 과장은 “그런 문제나 후원자 개발과 관리를 위해 같은 법인인 부천 혜림원 한 켠에 사무실을 두고 사회복지사와 사무직원, 보육사 등을 별도로 채용해 그 같은 문제를 해소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장봉도라는 섬에 초창기 정착한 주민들은 주로 6,25때 피난을 내려왔다가 돌아가지 못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눌러 앉게 된 사람들이라고 한다.  대략 3백 50세대 1천 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어 혜림원 식구들의 숫자가 전체 주민의 10분의 일이나 되는 셈이다. 직원들은 “우리 장애우들 중에서 한 명이 이장 선거를 나가도 표를 몰아주면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그런데 교육환경이나 주거환경이 그다지 좋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섬의 젊은이들은 모두 도회지로 나가고 아이들과 노인들만이 생활하고 있다.  주민들의 생계수단은 어업과 김 양식이 대부분이었는데, 영종도에 신공항건설이 진행되면서부터는 환경이 많이 오염되고 갯벌이 없어져 버렸단다.  그 대신 국가에서 보상받은 보상금에 기대 아예 육지로 이사를 가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래서 예전에는 지역 청년회 회원들과 장봉혜림원 직원들이 체육대회등의 행사를 같이 하고 청년회원들이 자원활동도 하면서 교류를 활발히 했으나 요즘은 그런 모습도 찾아보기 어려운 형편이라는 것이다.

한편 섬이라는 환경은 운영상으로도 많은 어려움을 안겨주는 조건이기도 하다.

기자가 찾아간 9월 16, 17일에는 영종도와 장봉도를 연결하는 선박회사가 부도가 났는데 배가 차압돼 부랴뷰랴 마련된, 열 사람정도나 간신히 앉을 수 있는 매우 작은 행정선만이 운행되고 있었다. 

총무과 이한형 과장은 “이런 사태가 일주일만 계속되면 필요한 양의 쌀과 반찬거리들을 실어올 수 없어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장애인과 직원들의 세 끼 식사를 마련하는데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매일 8시, 2시, 4시.  영종도와 장봉도에서 이렇게 하루 4번만 배편이 운행되는 상황이라 직원들의 당일 출장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 교통비며 배 시간에 대지 못해 불가피하게 외지에서 하룻밤을 묵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 숙박비 등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부대비용도 큰 문제라고 했다.

그로 인한 직원들의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고 고립된 환경이지만 전체 사회복지정보 접근도 다른 시설들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삼십 명 남짓 한 직원들의 컴퓨터에 랜(LAN 기업내 정보통신망)을 설치했고, 서둘러 ISDN도 설치했다고 한다.

왜 섬에 살고 있는가, 거듭되는 기자의 질문에

임성만 원장은 이 장봉도도 1천 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엄연한 생활공간이고, 왜 섬에 있느냐만 따진다면 경상도 사람보고 왜 경상도에 사느냐고 묻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한다.  “더구나 도심 속에 있어도 장애우 시설은 원래 외로운 섬과 같이 지역주민들에게서 고립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만큼 지역사회중심과의 거리가 중요하다기 보다 외진 곳에 있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시설운영이 개방되어 있고 실제 교류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장봉혜림원의 경우 모든 시설 운영관련 자료가 외부 방문객들에게 모두 공개되고 있고, 섬이라는 사실을 오히려 활용해 방문자들을 시설 쪽에서 적극 유치하고 이후 후원사업등에 연계시키는 방안을 실시하고 있었다.

물론 다른 대부분의 장애우시설들도 큰 도시를 중심으로 했을 때 보통 버스로 2시간 정도는 타고 들어가야 하는 외진 곳에 있는 곳이 대부분인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시설 개방과 그에 따른 지역 주민들과의 연계가 잘 이뤄지지 못하고 임 원장의 표현대로 “도심에 있어도 장애우시설은 외로운 섬과 같은 존재”인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도 “섬에 장애우시설이 있는 것은 분명한 문제”라며 그 사실이 여러 가지 면에서 몹시 한스럽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이렇게 반문했다. 

“현재 부지가 3만평이지만 도심에 1천 평으로 옮겨가라고 한다면 갈 용의가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를 받아줄 지역이 있겠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일. 

그 숙제를 장애계 전체 관계자들에게 돌리고자 한다.

한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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