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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목표는 시설이 해체하는 것이다. (1996년 "내고장 인천" 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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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이선미 작성일2006-02-08 10:26 조회6,8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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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 / 내고장 인천 사회복지시설탐방 - 장봉혜림재활원 “우리의 목표는 시설의 해체다” 인천 월미도에서 영종도를 거쳐 도선으로 약 1시간 반 남짓 서해를 향하면 마주치는 「섬」. 여느 섬처럼 보이는 곳이라곤 바다와 갯펄, 그리고 몇 안 되는 촌락의 평화스런 풍경의 「섬」. 장봉도(長峰島). 이 섬에 정신지체장애인 100여명이 살아가는 장봉혜림재활원이 있다. 이곳에는 지적인 능력이 열악하여 의사소통 및 신변의 처리가 불가능한 중증장애인으로부터 교육적, 사회적 재활 욕구가 거의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는 경증장애인에 이르기까지 장애의 개인차가 천차만별한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생활하고 있다. 나즈막한 동산을 삼면에 병풍으로 삼고, 양지바른 정남향의 바다를 향해 교육관, 복지관, 생활관 등의 다양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재활원의 모습은 복지시설이기보다는 마치 경치 좋은 곳의 산장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 건물들은 한평생을 사회복지사업에 헌신하신 부친의 영향을 받아 특수교육과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원장으로 취임한 임성만 원장(38세)이 직접 설계하고 직원들의 피눈물나는 노력과 정성으로 지었다고 한다. 장봉혜림원의 직원들이 말하는 장애복지의 개념은 다소 생소한 데가 있다. 장봉혜림원의 모든 프로그램은 ‘장애인들을 사회로 복귀시키기 위해서’라는 목표로 운영된다. “장애인복지시설은 불우한 장애인들을 일반사회에서 격리시켜 단순히 수용,보호하는 곳이 아닙니다. 의식주 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서비스의 기능과 그 다음에 치료,교육,훈련 등의 기술적 서비스의 기능 그리고 장애인들의 인권을 대변해 주고 장애인들의 사회통합과 참여를 가능케 해주는 원조적 서비스의 기능을 다양하게 수행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복지시설이 장애인들의 인생의 종착점이 아니라 사회복귀의 과정적 기능을 담당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임원장의 주장이다. 그래서 그저 기댈 곳 없는 불쌍한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 봉사하겠다는 감상적 생각으로 장봉혜림원을 찾았던 신입직원들은 빡빡하게 짜여진 연수기간 동안 완전히 그 생각을 바꾸게 된다고 한다. 장봉혜림원에 사는 100여명의 장애인들은 부모 형제가 없는 무연고인 장애인이 60%, 영세가정에서 위탁된 장애인이 40%가량 된다고 한다. 그러나 임원장은 정말로 무연고인 장애인들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선진 외국처럼 장애연금이 실시되지 못하는 가운데 장애아를 기르면서 부모만이 감당해야 하는 경제적, 정신적인 압박감 떄문에 자녀를 유기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가난하거나 버려져야만 국가가 개입하여 이러한 시설을 알선해 주고 무료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93년에 SBS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를 통해 ‘버려져야 보호받는 생명’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모순을 고발하는 방송이 임원장의 기획과 참여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장봉혜림원에서는 특수교육 및 직업훈련 그리고 특별활동 등의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장애인들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매주 화요일 두시간 동안 실시되는 ‘open school' 시간이다. 이 시간은 시설내에 제한된 환경과 고정화된 프로그램으로 인해 장애인 개개인의 욕구가 묵살되지 않도록 여러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평소 일상생활에서 나타나고 있는 장애인들의 욕구를 파악하여 매주 다른 내용으로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제시하면 장애인들이 직접 선택하여 참가하는 시간이다. 예를들면 자동차를 타고 싶은 욕구가 있는 장애인이 있으면 자동차를 태워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고, 화장을 하고 싶은 장애인에게는 화장을 해주고 하는 식이다. 이 날은 수동적이기 쉬운 시설장애인들의 생활을 탈피하여 이날만큼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선택하고 모든 활동의 주체가 되는 ’열린 날, 열린 학교‘인 것이다. 미용강좌 때 명옥씨는 처음으로 화장을 해보았고, 병훈씨는 머리에 무스를 발라 보고 마냥 좋아했다. 모조 화폐로 야시장의 물품구매를 하는 시간에 이판우군은 그것이 진짜 화폐인양 사용하지 않고 주머니에 꼭꼭 넣고 다녀 주위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임원장은 장애인들과 ’인천상륙작전’을 자주 시도한다.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에서 나타날 수 있는 고립감을 해소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애인들을 「사회속의 섬」과 같은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매년 수학여행을 통해 서울, 경기,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제주도, 대전엑스포에 이르기까지 전국 국토순례를 이미 마친 바 있다. 어떤 이들은 온전치 못한 장애인들을 데리고 왜 힘들게 여행같은 걸 가느냐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장봉혜림원의 직원들은 장애인도 세상의 모든 모습을 보아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 세상 사람들에게 장애인들을 낯익은 존재로 만들고 싶어한다. 이런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드는 비용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보조금으로는 어림도 없다. 모든 교육,훈련 프로그램에 필요한 비용은 뜻있는 독지가들의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장봉혜림원에서 매달 발간하는 ‘섬에서 온 편지’는 장애인들의 꾸밈없는 이야기와 시설내의 소식을 육지로 전하는 매체가 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후원자들이 참여하게 되고 이를 통해 장애인들이 사회복귀의 꿈을 키울 수 있다고 한다. 95년 1월 14일에는 시설 장애인들의 사회복귀 프로그램의 하나로서 ‘그룹홈(장애인공동가정)’이 우리나라 복지시설로서는 최초로 설치되어 시설장애인들이 지역사회로 복귀하였다. 시설을 떠나 이곳에 나와 살게 된 장애인들은 조금만 도움을 받으면 사회에서 당당히 직업을 갖고 스스로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는 장애인들이다. 판우, 종관이, 성호, 동원씨가 사는 그룹홈은 부천시 춘의동 영구임대아파트로 사회복지사 한명이 상주하여 이들의 생활을 살펴주고 있으며, 전문 사회복지사가 수시 방문하여 이들을 지원해 주고 있다. 아주 기본적인 생활부터 배우고 있지만 이젠 모두가 취업이 되어 떳떳한 직업인으로 복귀한 것이다. 이들은 소규모 기업체의 생산라인 중의 한 과정인 나사를 끼우거나 조립하는 등의 단순한 일을 하고 있지만 쉽게 싫증을 느끼지 않고 성실함을 인정받고 있기 떄문에 동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그룹홈’은 96년도에도 인천 선학동 주공아파트에 두세대 7명이 사회복귀로 이어졌고, 이달 11월에도 두세대 7명의 장애인들이 사회로 나가 살게될 예정이다. 그동안 그룹홈이 장봉혜림원의 시범적 사업이었기에 국비나 지방비의 지원이 없어 고생도 많았지만 이제 그 성과가 알려져 인천시에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 주고 있다고 한다. 임원장은 앞으로 장봉혜림원 내의 생활도 가정적인 형태로 바꾸어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 기숙실도 가정집과 같이 고치고, 식사도 식판대신 가정용 식기로, 탁자대신 밥상으로 바꾸는 등 최대한으로 가정과 흡사한 환경을 만들어 시설의 장애인들이 사회에 나가서도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시설 환경을 개선하고 교육방법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생각이라고 한다. “우리의 목표는 시설의 해체다”라고 외치는 장봉혜림원의 모든 직원들. 그들은 장애인들의 삶의 터전이 장봉이 아니라 일반사회에서 일반인과 다르지 않은 주거환경 속에서 더불어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오늘도 열심히 바닷길을 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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