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봉도 섬마을 사람들 이야기 > 언론속의 혜림원

본문 바로가기

언론속의 혜림원

home > 지식과 정보나눔 > 언론속의 혜림원
언론속의 혜림원

장봉도 섬마을 사람들 이야기

페이지 정보

작성 문미정 작성일2023-11-08 16:51 조회410회 댓글0건

본문

2574502dc5efcaac20ef372b7f10ab6c_1701780

장봉도 섬마을 사람들 이야기 > 세상, 한 걸음 | 함께걸음 (cowalknews.co.kr)     <--- 링크

 

thumb-1794555031_1696894481.1838_600x345

지역주민 반대로 섬까지 밀려나게 된 장봉혜림원 사람들

섬이라는 제한적 환경 속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고민하다
안의 이야기를 밖으로 내보내고, 바깥 자원을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수십 년의 노력들
장봉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에 있는 면적 7km² 크기의 섬으로 약 천 여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이다. 장봉도의 이름을 풀어보면 ‘봉우리가 길게 늘어선 섬’으로 능선과 해안을 따라 7개의 트레킹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이에 따라 아직 육로가 없어 삼목항에서 40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임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트레킹 코스 중 7코스 ‘장봉보물길’의 종착점은 혜림원이다. ‘혜림원까지 0.8km가 남았다’는 이정표를 따라 가다보면 약 100여 명의 장애인과 70여 명의 비장애인들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을 만날 수 있다. 

 

혜림원이 처음부터 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 당시에는 부천 시내에 있었고 이곳에서 살아가던 아동들이 성인이 되어 새롭게 살아갈 공간을 마련하려는 시기에 인근 지역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었다. 결국 혜림원 사람들은 1985년 6월에 시청 등 행정기관의 중재로 섬까지 밀려나게 되었다.

 
원해서 살게 된 곳은 아니지만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혜림원의 모든 사람들은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낯선 곳에서 적응해야 하는 것은 이용인, 종사자 구분할 것 없이 혜림원의 모든 사람들이 해결해야 할 숙제였다.
 
여기서 벽돌은 거주할 공간의 벽돌 뿐 아니라 새로운 지역 주민들과의 관계,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준비과정도 의미한다. 혜림원의 사람들은 섬이라고 하는 물리적 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지역사회와 분리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이들의 이야기를 외부로 알리고 외부의 사람들을 공동체 안으로 초청하는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새로운 터를 잡게 된지 7년 만에 이들은 ‘섬에서 온 편지’라는 정기 소식지를 매 달 발간하기 시작했다. 9월이면 349호 발간에 접어드는 이 소식지에는 혜림원 안에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이야기뿐 아니라 마을 이장, 인근 내과 원장, 벼룩시장 사장 등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아낸다. 100호와 200호 그리고 300호를 거슬러 올라 차분히 읽다보면 그 당시 장애당사자들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사람들의 다양하고 생생한 고민들을 엿볼 수 있다.
 
‘섬에서 온 편지’를 발간하는 일이 안의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는 작업이라면 반대로 외부에서는 장애에 대한 전문성이 높은 교수 등 전문가 다수를 혜림원 안으로 초청하여 운영의 방향성을 함께 모색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단순한 ‘물리적 통합’이 아닌 지역 내 자연스러운 스며듦을 추구하며
혜림원 사람들은 비장애와 장애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주력했다. 그 첫 번째가 주거의 형태를 전환하는 것이었다. 혜림원의 당사자들은 6·25전쟁 이후 고아가 되어 보육원에서 자라며 집단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병원이나 감옥처럼 생긴 집단숙소가 아닌 가정집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생각으로 혜림원은 거실과 방 3개, 화장실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주택을 구상하여 벽돌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기 시작했다. 살아갈 집의 이름도 ‘사랑’, ‘소망’과 같은 이름보다는 ‘눈꽃빌라’, ‘파크빌’ 등 일반 주택과 빌라와 같이 평범하게 지었다.
 
주거의 형태가 전환되면서 ‘전문가’, ‘관리자’, ‘통제자’의 역할을 하던 비장애인 종사자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촉진자’, ‘옹호자’, ‘협력자’로 변화되어 갔다. ‘이용인’들이 밥을 깨끗하게 잘 먹는지 ‘통제’하는 사람에서 ‘○○씨’가 지역 내에서 원하는 식당을 잘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람으로 말이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매일같이 찾는 마트 주인이 “가끔 계산 안하고 난동부리는 사람도 있어서 직원들이랑 좀 같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혜림원 종사자들에게 요청하여도 ‘최소한의 개입’을 원칙으로 지원자들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도록 꾸준히 실천해 나가고 있다.

두 번째는 일상의 모습에서 변화가 필요했다. 집단시설에서는 같은 공간에서 잠도 자고, 식사도 하며 심지어 직장과 여가생활까지 함께 진행되기도 한다. 그러나 시설 밖의 삶을 둘러보았을 때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를 위해 9시부터 6시까지의 일과를 최대한 세분화하고 일과 여가, 그리고 생활의 공간을 분리하였다.
 
식사의 경우, 모두가 동일한 식단을 먹는 형태는 지양하고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해먹거나 지역에 있는 식당에 가서 밥을 사먹는다. 또 이·미용 봉사자에 의해 내가 원하지 않는 날짜에,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머리를 잘라야 했던 지난 날들의 방식에서 벗어나 각자에게 맞는 미용실을 찾아 이용하며 지역사회에 스며들고자 하였다.
 
이들의 ‘보통의 삶’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병원, 주민센터, 은행, 반찬가게, 이웃주민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어나가고 있다.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혜림원 사람들 모두가 잘 알고 있다. 한 번은 이웃집 창문을 깬 적도, 문이 열려있는 빈 집에 가서 간식을 꺼내먹고 온 적도 있다. 고의적 의도가 하나도 없는 당사자들이었지만 이러한 행동이 쉽사리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혜림원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다가간다. 장애와 더불어 생애주기에 맞는 사회적 경험이 부족한 발달장애인의 특성에 대해, 그리고 이들이 보통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기울이는 수많은 노력들에 대해 반복적으로 설명하며 말이다.
 
발달장애인이 대중교통을 타고 출근하기까지 길게는 1년 동안 자신이 타야할 버스를 외우고 기억하는 방법을 연습하는 것, 은행 ATM기계를 사용하기 위해 비밀번호 입력하는 연습을 수없이 반복하는 것, 또 마트에서 필요한 것들을 사기 위해 미리 연습하는 과정들에 대해 알린다.
 
이 연습 과정을 지역의 은행과 경찰서 등에서 알고 있으면 당사자가 은행에 돈을 찾으러 갔을 때, 서류 작성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조금 더 당사자를 옹호하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이 마을에서는 더디지만 조금씩 그 변화는 이루어져가고 있다.
 
“얼마 전에 지역에서 당사자 세 분이 요가학원을 등록했어요. 비장애인 세 명, 장애인 세 명 이렇게 한 반으로 구성해서요. 당사자들은 대부분 ‘장애가 있는 사람들끼리’ 집단으로 묶여져서 체육이든 프로그램이든 하게 되잖아요. 그렇게 되면 개인이 사라지고 집단으로 불려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거고요. 당사자들이 집단이 아닌 한 명의 개인으로서 지역사회를 누비길 바라며 끊임없이 지역사회에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 임지웅 사무국장
 
장봉혜림원과 공생하는 지역상인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이웃이 되다.
옹암해변 바로 앞에 위치한 ‘한그루 카페(사장 이미은)’는 장봉도에 몇 없는 카페 중 한 곳이자 장봉도 주민들의 사랑방이기도 하다. 평일 오후 1시 즈음, 장봉혜림원에서 살고 있는 발달장애인 당사자 민철(가명) 씨가 카페에 들어서더니 대뜸 사장에게 천 원 짜리 세 장을 건넨다.
 
사장은 당황하기 보다 “장봉커피 한 잔 드실 거죠? 잠시만 앉아계세요. 금방 드릴게요.” 라고 답하며 바로 커피를 만들었다. 사장은 민철 씨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듯 했고 사장의 말에 아무대꾸 없이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민철 씨의 표정은 꽤나 편안해보였다.
 
곧이어 장봉혜림원에서 온 또 다른 손님이 카페로 들어왔다. 이번엔 말이 많고 살가운 손님이었다. “사장님, 저 왔어요. 오늘 저 이거 했어요.” 사장은 당사자의 이름을 부르며 반가운 정으로 간단한 안부 인사를 건넸다.

“제가 장봉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인데 사실 어릴 땐 혜림원에 사는 사람들이 무서워 피해다닌 적도 있어요. 그런데 이 카페를 차리고 나서 이분들이랑 자꾸 부딪히고 만나고 말을 섞어보니까 이제는 정말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아요. 서로서로 안부 묻는 친구 사이랄까요?”
 
“사실은 혜림원 분들 덕분에 우리 카페가 아직까지 잘 운영이 되고 있어요. 섬 특성상 주말에는 외지인들이 많이 놀러오지만 평일엔 손님이 없거든요. 혜림원 분들이 저에게는 아주 소중한 고객 분들이에요. 물론 가끔 돈을 안내고 가시는 일도 있긴 한데, 그래도 괜찮아요. 제가 혜림원 직원 분들 연락처를 다 갖고 있어서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 드리면 되거든요. 그리고 가끔 외지 손님들 중에 혜림원 분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혜림원 분들이 앉아계시면 선뜻 못들어오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그럴 땐 제가 가서 설명드리기도 해요. 괜찮다고. 이 카페 자주 이용하시는 주민분이라고요.”

한그루카페 이미은 사장은 당사자를 포함한 많은 손님들에게 ‘경계를 줄이고 자주 살을 부대끼면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용기를 건넨다.
 
“어디 살아요?”
“요 앞 빌라에 살아요”
 
반찬가게에서 평소처럼 가격을 묻고 계산을 하고 있을 때 들려온 반찬가게 사장의 질문. 이 질문을 계기로 당사자들과 반찬가게 장영미 사장은 10년이 넘도록 좋은 이웃 관계를 맺어나가고 있다. 서로 인사와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를 너머 이제는 당사자들의 집에 놀러가 맛있게 요리하는 방법과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는 법까지 알려주는 사이로 발전했다.
 
한 개인의 사회적 관계망은 그 사람의 삶의 질을 가늠할 수 있는 주요한 단서가 된다. 서로가경계를 허물고 이웃이 되어주기로 결심한다면, 그리고 직접 눈을 맞추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질문을 쌓아간다면 그 마음과 질문들이 모여 더 탄탄한 마을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