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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 통하는 장애인 서비스를 위하여... (1996년 쌍용그룹 사보 "여의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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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이선미 작성일2006-02-08 10:41 조회7,6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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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 / 여의주(쌍용사보) / 4~7면 상식이 통하는 장애인 서비스를 위하여 ‘버려져야 보호받는 생명들’ 언젠가 임성만 원장이 한 방송국과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제목으로 뽑아준 것이다. 짤막한 이 제목은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으며, 또 어떻게 그 문제들이 해결되고 있는지를 시사해주고 있다. “가두어서 보호하는 식의 복지는 복지가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의 복지는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작업복을 입고 한창 바쁜 일손을 놀리던 임 원장의 첫 마디다. 그 뒤로 ‘사회복지’에 대한 얘기가 줄줄이 엮여 나온다. 복지 시설의 원장치고는 비교적 젊은 축에 드는 서른아홉의 나이. 사회복지 이론만을 내세우는 이론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선사업가도 아니다. 그는 장애인복지 전문가이다. ‘전문가’라는 말이 지나치게 쉽고 많이 쓰이는 세상이지만. 그의 이름 뒤에 ‘전문가’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것은 그는 정말 이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장애인복지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깊이 공부하고 또 생각하고 배운 것을 현장에서 실천하고 있는 임원장은. 어려서부터 장애인과 함께 살아왔다. 그의 부친인 임병덕 목사가 오래전부터 전쟁 고아들을 돌보는 일에서 시작하여 장애인을 위한 재활원을 운영해왔기 때문이다. 부친의 모습을 보며 자라던 그는 솔직히 아버지가 하는 일만은 피해가고 싶었다고 한다. 긴긴 방황 끝에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뒤늦게 특수교육학을 전공해 이 일에 뛰어들었다. 현재 임원장은 부천에 있는 부천혜림원과 서해안 장봉도에 있는 장봉혜림재활원 두 곳의 살림을 맡고 있다. 85년에 개원한 장봉혜림재활원은 만 열여덟 살 이상의 성인 정신지체인들을 위한 재활시설이다. 어려서부터 재활원에서 자란 장애인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사회에서 생활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재활 시설로 장봉혜림재활원이 생기게 되었단다. 이 재활원이 자리잡고 있는 장봉도는 인천 월미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영종도에 내려 다시 삼목 뱃터라는 곳에 가서 배를 갈아타야 갈 수 있는 곳이다. 도시의 주민들의 반대에 쫓겨 섬까지 왔는데, 이곳 섬에서도 처음엔 주민들의 반대가 무척 심했다고 한다. 어렵게 설득을 해 나가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시설이 부족해서 임원장과 직원들은 건물 짓는 것도 맡아해야 했단다. 장봉혜림재활원에는 현재 100여명의 장애인들과 40명의 직원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배를 두 번 갈아타야 하고 그나마 배도 자주 드나들지 않기 때문에 직원들도 전부 이곳 기숙사에서 생활을 한다. 그리고 이곳이 단순히 의식주 문제의 해결 뿐만 아니라, 사회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 과정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장애인들을 위한 특수 학교도 세워져 있고, 물리치료와 언어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기초적인 직업기능을 개발할 수 있도록 장애인들이 농사와 가축 기르기도 하며, 합주단, 축구반 등 여러 가지 클럽활동도 이루어지고 있다. 장애인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일과 중에 ‘오픈데이(open day)’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마련되는 이 시간에는 전화하기, 산책하기, 고구마 찌기, 드라이브하기 등 그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서 하는 이 시간만큼은 장애인들이주체가 되어 모든 활동이 진행되며, 장애인들의 평소 욕구에 의해 그 내용이 채워진다. 따라서 형식적인 교육의 시간이 아니라, 그때그때 나타나는 장애인들의 욕구가 발현되는 생활 그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장봉혜림재활원의 행사 중에는 이른바 ‘인천상륙작전’ 이라 불리는 수학여행이 있다. 늘 섬에서만 생활하다보면 사회에 대한 적응이 어려워질 것 같아 임원장은 일년에 몇 차례 장애인들과 뭍으로 나간다. 배 시간과 차시간에 맞춰 100여명의 장애인들을 무사히 인천 월미도 선착장으로 이동하는 일과 그곳에서 다시 목적지까지 차편 구하는 일, 숙소를 정하는 일은 정말 만만치가 않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몇 주 전부터 일정을 짜느라 고심하는 임 원장과 직원들은 아마도 46년 전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진두 지휘했을 때의 고뇌를 이해할지도 모른다. 장애인들은 직원들의 그런 고생 덕에 엑스포 관람도 했고 머나먼 제주도에도 가봤다. 장봉혜림재활원은 몇 년 전부터 한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룹홈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룹홈이란 일반 사회 지역 안에 있는 아파트나 연립 주택, 또는 단독주택 등 일반일들의 주택과 동일한 거주 공간에서 한 세대에 4-6명의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장애인복지 시설로는 처음으로 94년부터 그룹홈을 시도해온 장봉혜림재활원은 현재 인천에 두 세대, 부천에 두 세대, 모두 네 세대의 그룹홈을 운영하고 있다. 그룹홈에는 직원 한 명이 함께 생활하며 이들의 생활을 지원해주고 있다. 그룹홈에서 처음 생활을 시작할 때는 늘상 선생님의 지시만 받으며 지내다가 스스로 알아서 생활하게 된 이들에게 조금은 힘겨워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은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에 익숙해져왔고 일리를 갖게 된 이들도 생겨났다. 임원장은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회보장으로서 장애연금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부담은 전적으로 그 부모만이 짊어져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버려지는 아이들이 생겨나고 버려진 아이들은 결국 복지시설로 모이게 됩니다." "장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해가야 할 사회문제이기 때문에, 부모만이 책임져야할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장애인을 양육하는 가정을 지원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재활원 같은 복지시설은 평생을 살아야 하는 거주지가 아니라, 장애인이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중간 과정의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장봉혜림재활원의 최종 목표는 재활원을 없애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설에서 사는 모든 장애인들이 사회로 돌아가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가정을 이루며 지역사회 안에서 평범한 이웃으로 살게 되는 세상, 상식적인 보통의 삶이 실현되는 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세상이죠." 임 원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희생이나 봉사라는 생각으로만 이곳에 오지는 않았을 법하다. 몇 십만원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이곳에 남아 있는 이유는 그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인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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