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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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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민 작성일16-04-20 13:02 조회1,2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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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손덕명(주식회사 윌시스템 대표)

 

   내가 장봉을 떠나 온지도 20년이란 세월이 지나가고 있다. 장봉에서 만난 여자와 결혼을 하면서 떠나온 20, 그 세월의 길이만큼 나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 장봉혜림원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나는 그저 부모님의 걱정덩어리일 뿐인 장애인 자식이었기에 생을 의탁할 곳이 필요했던 처지였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장애인 자식을 둔 부모는 죄인 같아서 밖에 내놓기 보단 꼭꼭 숨기고 부끄러워했던 터라 학교도 다니지 않고 집안에서 스무 살이 되도록 살았다. 그러다가 어느 섬에 좋은 시설이 있다는 소개를 받은 부모님이 나를 장봉으로 보내셨다. 그랬는데 쫓겨났다. 당시 임성만 원장님께서 이 친구는 지적장애인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시설에 들어 올 대상이 아닌데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하시면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왔고 여전히 천덕꾸러기일 수밖에 없는 나날을 보내다가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그 때 막 나오기 시작한 개인용 컴퓨터(PC)를 사달라고 졸라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했다.

  

 인터넷이란 것도 없었고 디스켓이라는 자기기록 매체를 수시로 넣고 빼고 하면서 다루어야 하는 16비트 컴퓨터는 사실 프로그래밍을 해보는 용도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지만 그게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이것저것 해보느라 낮밤이 없었고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컴퓨터가 있기 이전에는 책을 보거나 TV, 라디오 이런 것들이 혼자 있는 나에게 벗이었지만 내가 어떤 명령을 내리면 무엇이든 반응을 하는 컴퓨터와 온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 서로 리액션을 해주는 친구 하나 없었던 나에겐 어쩌면 당연한 몰입이었지 싶다.

  그렇게 반응형 장난감(?)과 친구를 삼아 지내다가 컴퓨터로 쓴 편지를 출력해서 임성만 원장님께 안부인사를 보냈는데 그걸 보시고는 장애인으로서의 입소는 자격이 안되지만 직원으로 오는 것은 어떠냐고 원내 업무에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게 하라시며 직원으로 채용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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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후로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껏 혼자 책으로, TV라디오로, 신문으로만 대하고 이해하던 세상이 나에게 다가왔다. 아니 내가 그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면서 즐겁고 좋은 일상들을 체험할 수 있었고, 이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여행도 동료직원들과 출장삼아서 여기저기 다녀보고 비행기도 타보는 그 촌스러운(?) 경험을 비로소 누리는 평범한 생을 나도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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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여 년 전이었으니 젊음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비록 장애인이지만 나의 장애를 특별하게 보지 않는 예쁜(마음만) 여인을 만나고 그녀와 썸을 타고 더러 밀당도 하다가 결국 결혼이란 걸 했다. 결혼과 함께 장봉을 떠나 더 큰 세상에서 뭔가 이루어보겠다고 바둥거리면서 지낸게 어느새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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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봉을 떠난 20년 동안 아들 딸 아이들도 생기고 대학도 다녔고 전공을 살려 IT전문 기업을 설립해서 주식회사의 CEO가 되었다.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라 하면 뭔가 되게 그럴 듯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사실은 몸고생 맘고생 오만가지 고민들을 잔뜩 지니고 사는 무거운 어깨의 주인공일 따름이다. 문득 힘이 들고 지칠 때마다 장봉에서 보낸 청춘의 추억들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 때가 참 좋은 시절이었지하면서...

  한 여자의 남편, 두 아이의 아빠, 매달 직원들 급여를 챙겨야 하는 사장이라는 역할들로 나의 일상들은 여느 사람들의 그것과 다를 게 없을지도 모른다. 단지 장애인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비장애인과 조금은 다르게 비용 아닌 비용을 치르며 살아야 하는 부분은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에 대해 차별적인 시선들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요즘은 SNS상에서 장애인에 대한 모욕을 노골적으로 해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또한 내가 하는 일을 모르는 사람들은 나라에서 나오는 돈으로 먹고 살고 있는 줄 알고 매달 얼마씩 나오냐?”고 묻거나 집사람이 버는 돈으로 사는 줄 알기도 한다.

  국가에서 주는 기초생활 급여가 아닌 순전히 내가 내 힘으로 벌어서 먹고 사느라 어쩌면 그냥 장애인으로 살았더라면 쉬웠을 지도 모를 삶을 공연히 더 힘들게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스스로 자조감이 들기도 하지만 이렇게 세상으로 나온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나는 여전히 꿈을 꾼다.

장애인 기업가가 아닌 성공한 기업가가 되기 위해서...

 

▲ ㈜윌시스템의 손덕명 대표님은 1993~2002년까지 장봉혜림원에서 전산관리를 담당하였던 직원이셨습니다. 1994년 지금 우리원 종합정보시스템의 모태인 월숙이라는 후원자원 관리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사회복지 시설 업무의 전산화를 위한 많은 기여를 해주셨습니다. 이후 한남대학교 컴퓨터 공학과를 졸업한 뒤 벤처기업에서 근무하시다 2006년 컴퓨터 소프트웨어 및 홈페이지·인트라넷서비스 등을 개발·공급하는 윌시스템을 설립하였으며, 현재 장봉혜림원을 비롯한 많은 사회복지시설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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