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삼촌·이모와 함께한 3박4일 진짜 배움여행 > 혜림원은 지금

본문 바로가기

혜림원은 지금

home > 나누고픈 이야기 > 혜림원은 지금

장애인 삼촌·이모와 함께한 3박4일 진짜 배움여행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승화 작성일14-04-30 13:50 조회3,383회 댓글0건

본문

1 “삼촌! 이렇게 페인트를 묻혀서 칠해보세요.” 지난 16일. 서울 경희고 이효신군(오른쪽에서 둘째)과 같은 학급 친구들이 장애인들과 함께 장봉혜림재활원의 한 건물 바닥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함께하는 교육] 서울 경희고의 특별한 수학여행

학생들을 들뜨게 하는 수학여행 철이 돌아왔다. 어디로 갈까. 서울 경희고 학생들이 논의 끝에 좀 특별한 곳을 다녀왔다. ‘교육활동의 하나로서 교사의 인솔 아래 실시하는 여행’이라는 국어사전의 설명 취지에 충실하게.

수학여행의 계절 10월, 학교는 술렁거린다. 소규모 수학여행이 늘면서 장소 선택의 폭이 넓어졌지만 논란이 많다. 200만원이 넘는 고액 외국여행도 늘고, 외부 위탁형으로 진행하는 사례도 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위화감만 주고, 여행사진만 찍고 오는 식의 수학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지적도 들려온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서울 경희고 2학년 학생 32명과 최인영, 오만근 교사 등 총 34명이 떠났던 수학여행은 특별했다. 배도 타고, 바다도 봤다. 여기까진 보통 수학여행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3박4일 동안 장애인들과 함께 지내며 봉사도 겸했다는 점에서 확실히 달랐다. ‘나를 만나는 수학여행’이란 주제로 인천광역시 옹진군 장봉도에 있는 ‘장봉혜림재활원’(이하 ‘재활원’)으로 수학여행을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나도 딸이 둘이에요. 아들이 하나 있고…. (옆에 있는 한 학생을 가리키며) 이만한 아들이 있는데 어디 가 있는지 몰라. 할아버지가 데리고 갔나?”

50대 여성 장애인 순영(가명)씨가 들뜬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 16일 오후 2시30분쯤 재활원의 한 건물 앞. 건물 바닥과 벽에 페인트칠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20여명의 경희고 학생과 순영씨를 비롯해 세 명의 장애인이 함께 참여하는 대규모 작업이었다. “이렇게 페인트를 묻혀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칠해보세요. 옷에 안 묻게 조심하세요.” 평소 봉사활동 경험이 많다는 김경인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대신 가족 호칭 써달라 부탁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 운서역에 내리면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삼목선착장. 재활원은 이 선착장에서 배로 40분 거리의 장봉도 안에 있다. 인천에서 서쪽으로 21㎞ 해상에 위치한 이 섬에 남학생 32명과 두 남자 교사가 들어온 건 비가 내리던 지난 15일. 장애인들과의 첫 만남은 낯설었다. 한 학생은 “장애인들이 우릴 보자마자 등을 막 때려서 많이 놀랐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지금은 반가움의 표시라는 걸 모두 알죠.” 재활원 이한형 원장은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봉사를 오기는 하지만 한 반 규모가 수학여행을 온다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며 기특해했다.

사회복지법인 백십자사가 운영하는 재활원에는 현재 약 50명의 지적장애인(18살 이상)이 생활하고 있다. ‘장애인 관리’가 아닌 ‘장애인 자립’에 방점을 둔 이 재활원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자원개발팀 조대현 팀장은 “장애인들을 여기 계속 머물도록 하는 게 아니라 사회로 진출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목적이라 여러 가지 사회생활 프로그램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런 배경에서 장애인들은 각자 혼자 방에 사는 게 아니라 여럿이 ‘그룹홈’이라는 이름의 그룹을 이뤄 가족처럼 모여 생활한다. 가정 안에서 역할이 있듯 그룹홈 안에서도 각자 역할이 있었다. 각자 흥미나 적성에 맞춰 작업장에서 일하는 시간도 주어졌다.

수학여행 첫날, 학생들은 이렇게 재활원에 대한 소개부터 들었다. 이찬표군은 “본래 도시에 모여 살던 분들인데 사람들의 안 좋은 시선 때문에 여기 섬까지 들어오게 됐다고 한다”며 재활원 쪽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40대 중반의 장애인들이 많다고 하셨어요. 그분들에게 ‘저기요’라고 부르지 말고 ‘이모’, ‘삼촌’ 등 친근한 호칭을 써 달라고도 하셨죠.”

2 간식을 먹은 뒤 주어진 2시간의 산책 시간. 학생들은 장애인 삼촌·이모의 손을 잡고 2시간 동안 장봉도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제안은 선생님이 먼저 했지만
결정은 학생들이 투표로 했다
봉사하는 여행 한번 해보자고

자치회의 열어 활동계획도 짰다
낯선 경험에 대한 두려움은
앞서 다녀온 선배 글 보고 덜었다
재활원에서 함께 놀고 노동해보니
‘나를 만나는 여행’ 제대로 한듯하다

오후 3시30분, 한 장애인 그룹홈을 방문하자 11명의 장애인과 송하늘, 이원철군이 함께 떡볶이를 먹는 모습이 보였다. 설거지는 두 친구의 몫이었다. 그룹홈과의 시간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간식을 먹은 뒤 약 2시간 거리의 산책로를 걷고 오는 일이 남아 있었다. 페인트칠 등을 하던 다른 학생들도 각자 장애인 한 사람과 짝을 이뤄 산책하는 활동에 참여했다. “잠깐만요, 삼촌! 속도가 빨라졌어요. 우린 제일 마지막 사람 지나가면 그때 가요.” 이원철군은 내리막길에서 가속이 붙어 위태롭게 걷는 한 40대 남성 장애인의 손을 잡았다. 박성진군은 40대 여성 장애인과 짝이 됐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저희랑 같이 걸으니까 좋으셨나 봐요. 잠실 야구장에 다녀온 이야기를 자랑하시더군요. 조금만 계기를 만들어 드리고, 도움을 드리면 뭐든지 하실 수 있을 것 같던데요.”

학생들의 봉사는 끼니 때도 이어졌다.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설거지 당번을 맡은 조의 조원들은 돌아가며 조리실 안쪽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시작했다. 최인영 교사도 학생들과 함께 식판을 닦았다. 누구도 뭘 하라고 특별히 지시하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봉사와 운동, 각종 놀이 일정을 알아서 소화했다.

평소 생각 바꾸는 계기라 생각해 결정

‘봉사형 수학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건 지난 1학기 초. 최 교사가 먼저 운을 뗐다. “예년에도 선배 학생들이랑 1박2일 소풍으로 장봉도 봉사를 간 적이 있었어요. 그 시간을 의미 있게 기억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지금 이 아이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면 좋겠다 싶었죠. ‘장봉도라는 곳이 있는데…’라며 슬쩍 이야기만 던져놨습니다.”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그때는 대다수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고 한다. 그러다 다시 수학여행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먼저, 수학여행과 관련해서 자치회의가 열렸다. 단번에 장봉도행을 결정한 건 아니었다. 국내로 갈 것인지, 외국으로 갈 것인지부터 의견이 갈렸다. 돈 많이 들여 국외로 가기보다는 국내에 의미 있는 곳을 가자는 쪽이 더 많았다. 다수결에 따라 국내로 정해졌다. 제주도, 부산 등이 후보로 올라왔다. 장봉도 이야기도 나왔다. 여러 안 가운데 ‘봉사형 수학여행’으로 장봉도를 가자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반대 의견도 있었다.

그냥 결정할 일은 아닌 것 같아 민주적으로 투표를 했다. 학급회장을 맡은 송하늘군은 “32명 중 81%가 찬성을 했고, 나머지 19%가 반대를 했었다. 한번 더 해야 할 것 같아서 조금 지난 뒤에 투표를 다시 했는데 그때는 반대표가 몇 표 줄었다”고 설명했다. 반대표를 냈던 여섯명이 반대를 한 이유는 대체로 ‘장애인을 만나는 게 두렵기 때문’이었다. 수학여행의 전반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데 애를 쓴 기획부장 김동환군은 “여기 오기 싫고, 두려운 친구도 물론 있었겠지만 장애인들과 말 한마디라도 하면서 평소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마련되면 좋겠다 싶어서 최종 결정을 했다”고 했다.

박성진군은 “선생님이 보여주신 선배들의 글을 보고 장봉도행에 더 마음이 끌렸다”고 했다. 2001년, 당시 2학년이던 선배 학생들이 장봉도 소풍을 다녀와 쓴 글이었다. ‘우리 반의 소풍은 남달랐다’로 시작하는 홍순성 선배의 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버릴 것을 제안합니다’라고 적은 편병호 선배의 글 등 앞서 봉사를 하고 온 선배들의 이야기는 낯선 수학여행지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줬다.

3 “삼촌! 이쪽으로 패스요!” 학생들은 쉬는 시간 틈틈이 장애인들과 어울려 축구, 야구 등의 운동을 즐겼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휴대폰은 갖고 가되 걷어서 따로 보관

계획을 짜는 것도 학생들의 몫이었다. 이와 관련해서도 여러 번 자치회의가 열렸다. 그 결과 ‘건물 벽에 페인트칠해 드리기’, ‘그룹홈에 가서 말벗 해드리기’, ‘작업 도와드리기’ 등을 하기로 했다.

3박4일 동안의 숙박비와 식비, 간식비, 페인트칠 관련 비용, 모두 함께 입을 유니세프 티셔츠 비용까지 합쳐 수학여행비는 한 사람당 약 25만원이 들었다. 자치회의를 통해 ‘휴대폰은 갖고 가되, 재활원 안에서는 걷어 따로 보관해두자’는 규칙도 스스로 만들었다. 김정민군은 “지난 5월에 대성리로 1박2일 소풍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휴대폰만 만지고 있던 아이들 모습이 생각나서 자치회의 때 이 부분을 의논해보자고 얘기를 꺼냈었다”고 했다.

둘째 날이던 16일, 봉사로 하루를 보낸 학생들은 여지없이 이날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을 계획하기 위해 자치회의를 열었다. 저녁 7시가 되자 큰 방 거실에 32명이 원형으로 둘러앉았다. “오늘 모두 애 많이 썼어. 오늘 어땠는지, 그리고 내일은 뭘 할지 이야기를 나눠보자.” 송하늘군이 진행을 시작하자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손을 들었다. “새벽에 휴대폰 알람 좀 꺼줬으면 좋겠어. 알람 소리가 그게 뭐야.(웃음)” 한 친구의 장난 섞인 이야기에 모두 웃음보가 터졌다. 이효신군은 친구들을 향해 쓴소리도 덧붙였다. “오후에 페인트칠을 해야 해서 사전에 벽에 비닐을 붙이는 작업을 했어. 근데 누가 안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더라. 누군지는 말 안 할게. 앞으로는 자기 일 끝났다고 해서 그냥 있지 말고 함께 돕자!”

이날 밤, 회장단 쪽에서는 ‘장봉도에 있는 공동묘지를 찍고 돌아오는 담력훈련을 하자’는 흥미로운 아이디어도 냈다. 대다수가 찬성을 했고, 결국 밤 10시30분에 공동묘지 쪽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돌발사건이 일어났다. 중간에 다 같이 길을 잃었다. 화장실에 다녀오기로 한 친구가 잠시 사라지는 사건까지 겹쳤다. 결국 재활원에 다시 돌아온 시간은 새벽 1시30분. 말 그대로 담력훈련이었다. 이효신군은 여행 감상문에 이런 이야기도 적어놨다. “그날 밤 돌아오는 길에 우리한테 기획을 스스로 해보라고 기회를 주신 선생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했다. 아마 불안감과 책임감을 많이 느끼셨을 것이다. 학교에서 보던 선생님의 모습이 아닌 왜소한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정말 죄송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사흘째 되던 17일 아침, 학생들은 어제의 고단함을 잊은 듯 밝은 모습으로 운동장에서 피구 등을 하며 놀았다. 현경찬군은 전날 자신이 페인트칠을 한 계단을 밟으며 수학여행에 대한 소회를 털어놨다. “이틀 있어 보니까 알겠어요. 저희 개성이 다 다른 것처럼 각자 다 개성들이 다르세요. 장애인들한테 필요한 거요? 손님이죠. 사람이 필요하셨던 것 같아요.”

수학여행을 하루 남겨둔 날인 17일 아침, 기획부장을 맡은 김동환군에게 물었다. 힘들지 않으냐고. 교과서로만 장애인, 인권을 만난 학생들은 할 수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힘든 것도 배우려고 이런 수학여행을 기획한 건데요 뭐.(웃음) 실은 지적장애인이라고 해서 감정이나 생각도 3, 4살에 머물러 있을 거라고 짐작했어요. 표현력이 부족한 거지 생각이 부족한 건 아니던데요.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물론 있죠. 근데 대충 이런 걸 말씀하시려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고 다시 물어보면 어떤 의미인지 답이 나와요.”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