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체험이 아니라 장애인‘생활현장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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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수진 작성일16-10-31 14:55 조회12,662회 댓글9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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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체험이 아니라 장애인 '생활현장체험'이다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한 개인이나 집단을 다르게 대우함으로써, 심리적·사회적 불이익을 주는‘차별’(差別)은 자의적(恣意的)인 동시에 사회적이며 역사적이다. 그래서 차별은 하나의‘문화’적인 행동양식이기도 하다 .
그러한 차별의 문화 행동 양식에 반응하는 장애인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변화를 추구하거나 실천에 공명하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를 우리는‘인권감수성’또는‘장애감수성’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현장에서 인권감수성과 장애감수성을 키우기 위해 하는 가장 일반적인 콘텐츠 중 하나가 장애체험일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어떤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그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에 대하여 많이 알면 알수록, 경험하면 할수록 편견과 차별은 없을 것이며,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 장애인의 인권도 훨씬 신장될 것이라 말한다. 물론 그러한 주장은 타당하고 효과도 크다. 허나 한편으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문점도 남는다.
예를들면 여성이나 외국인 및 북한 이주자의 인식과 이해가 증진되면서, 그들의 인권이 본질적으로 개선되고 있는가?
우리 스스로 장애란‘사회가 만드는 환경적이며 사회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장애인 당사자의 육체적인 장애와 고통에 집중된 장애 체험만을 쉬이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왜‘장애인 체험’이 아니라‘장애 체험’인가? 궁극적으로 장애 자체가 과연 체험될 수 있는 것인가? 장애인의 소수성이 장애 때문에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경험해 보는 것이라면 다른 소수자의 정체성, 여성이나 동성애도 체험 가능해야 하고 그런 프로그램을 시행해야 하지 않을까?
본질적으로 장애가 체험될 수 있는 성질의 대상이라면,‘비장애’역시 상대적 경험 주체인 장애인에게 체험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장애인은 비장애인으로 환원될 수 없고, 비장애인은 장애 상태로 장기간 체험하려 하지 않는다.
체험은 그 주체들이 언제 어떻게 체험을 할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 라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성질이기 때문에, 장애를 체험한다고 말하는 것은 언제든지‘비장애’상태로 복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장애 체험의 순수한 인권교육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목발을 짚고 휠체어를 타고 흰 지팡이를 짚고서 하루 동안 또는 몇 시간 장애 체험을 한다고 장애인들이 일상적으로 당하는 차별과 모욕을 체험할 수 있는지에 장애인 당사자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장애인의 장애는 개인의 자의적 선택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구조적으로 규정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깊은 고민 없이 시행하는 장애 체험 프로그램은 장애를 단순히 육체적인 결손과 고통으로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비장애를 건강함과 다행으로 생각한다라는 역효과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차별의 직접적인 모습은 그 대상에게 스스로 차별 받는 존재임을 드러내라고 강요받는 것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장애 체험을 통해서 비장애인들의 비장애의 육체를 부모에게 감사하고 자신의 건강함을 확인하는 순간, 그것을 바라보는 같은 공간의 장애인에게는 일종의 강제적인‘아웃팅’이며 동의되지 않은 정서적인 폭력일 수도 있다.
장애인의 문제와 차별을 인식하기 위한 지금의 비장애인들이 하는 장애 체험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교육적으로 유용하다 할지라도 언제든 정상적인 상태, 즉 비장애적인 상태로 회귀한다는 것을 언제나 약속하고 돌아갈 수 있는, 장애 극복과 인간 승리라는 장애가 주는 고통과 차별을 개인적으로 극복하지 못하면‘장애인=루저’,‘장애는 고통’이라는 도식을 만들어 낼 위험이 있다.
장애가 의학적으로는 고통일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당사자의 다양성이자 개별성일 뿐이다. 그러한 당사자의 신체적·정신적 다양성과 개별성을 우리 사회 환경이 적절하게 지원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장애인이 장애 상태와 차별에 놓인 것이고, 그런 상호작용 속에서 사람들은 편견과 선입견을 교육받지 않는가? 오히려 장애가 그토록 힘든 것이라면,‘장애’가 차별이 되지 않고, 고통이 되지 않은 무장애 사회 무장애 공간을 장애인에게 경험시키는 것이 더욱 장애이해와 인식개선, 인권에 더욱 부합하지 않는가?
그래서 궁극적으로 장애 체험 프로그램은 한 두 시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1박 2일이라도 보다 긴 시간 동안 일상과 사회생활을 함께 해보는 장애인 생활 현장 체험으로 보다 세밀하고 깊이 있게 발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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