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시설 장봉혜림원, 자립위해 서로 돕고 사는 마음이 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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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문미정 작성일2024-06-18 18:40 조회558회 댓글0건본문
장봉혜림원을 거쳐 장봉도 맛집을 탐방하는 특별기획단이 장봉혜림원을 기사 내용에 담아주셨습니다.
[섬이 차려준 밥상] 3. 장봉에서 맛본 섬의 속살 - 인천일보 (incheonilbo.com)
여행의 애수를 치료해주는 음식
영종도 삼목항, 여객선 엔진이 돌기 시작하자, 갈매기들이 마스트 꼭대기부터 옹기종기 도열을 시작한다. 새하얀 셔츠에 잿빛 재킷을 차려입고 나란히 서 있는 모양이 흡사 해군 관함식을 방불케 하여 바닷바람은 덩달아 상쾌하기만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여객선을 타고 섬에 들어갈 때마다 알 듯 모를 듯 이중 삼중의 복잡한 마음이 치밀곤 한다. 바닷바람을 가르며 망망한 바다를 내쳐달릴 때의 벅차오르는 장쾌한 마음.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호젓한 기분에 휩싸여 방금 이별한 뭍에 대한 향수가 미묘하게 섞이는 이 아이러니. 아마도 이것은 섬 여행만이 자아내는 아주 독특한 감정이 아닐까한다. 하지만 오늘 맛본 장봉도의 음식에는 그런 애수의 간기가 빠져있다. 아니, 오히려 여행객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멜랑콜리한 감상을 단박에 치료해주는 독특한 맛이 장봉도의 음식에는 숨어 있다.
진정한 섬 음식의 정수, 두부
통상 섬에서 끼니를 해결한다고 하면 으레 바다에서 나는 날것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장봉도 역시 옹진군의 많은 섬이 그러하듯 어업만큼이나 농업이 성하고, 까닭에 바다 음식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밭의 음식이다. 장봉도까지 들어와 맛보기로 한 음식이 펄떡거리는 생선이 아니라, 겨우 '두부'라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크게 한풀 꺾였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당신의 운을 걸고서라도', 운이 좋은 축이라면 꼭 두부를 한 번 잡숴보시라 권하고 싶다. 우리가 방문한 가게에는 “섬사랑 협동조합”이라는 간판이 떡하니 붙어있었다. 간판 상호가 “협동조합”이라니, 결코 구미가 당기는 간판도 아니요, 무슨 비법을 쓸 요량이나 의지 따위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지극히 '사무적인' 구내식당과 같은 상호였다.
그런데 이 간판이야말로 고도의 전략이 아닐 수 없다. 관광객의 이목을 조금도 끌지 않겠다는 의지가 이 간판에 숨겨진 비밀이다. 스쳐가는 외지인보다는 연로한 마을 주민들, 그리고 항시 공사가 끊이지 않아 섬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 인부들에게 식사를 제공하자는 것이 이 식당의 운영 취지이다. 무려 부녀회가 합심하여 만든 음식점이니, 음식점이기는 하되, 반쯤은 집밥을 겸하며 마을 사람들을 봉양하는 반절 짜리 식당이다. '협동조합'이라는 생뚱맞은 상호가 비로소 이해 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부녀회가 내주는 음식이니 호객을 위한 음식이 아니요, 식구들과 늘 함께 먹는 음식, 말하자면 장봉도의 진짜 토속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셈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우연한 발걸음에 들른 우리가 정말 '계 탄 날'이로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덕분에 우리는 섬에서 다른 것도 아닌 두부를 맛볼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두부만큼 섬과 친한 음식이 또 있을까 싶다. 섬 토질의 특성상 밭농사가 성할 수밖에 없기에, 가장 흔한 작물이 콩일 테고, 두부를 응고시키기 위해서는 간수가 필요하니 바닷물은 콩의 좋은 배필이 아닐 수 없다. 두붓간에서 막 만들어진 뜨끈한 순두부는 초물(두부 삶은 물)에 반쯤 몸을 담근 채로 나온다. 공장에서 만든 기성품 마냥 단면이 매끈한 것이 아니라, 불규칙한 구멍이 숭숭 뚫린 것이 하얀 갯바위와 같은 모양새이다. 그리고 그 구멍 사이로 짐짐하면서도 달큰한 초물을 가득 머금고 있어서, 두부가 과연 바다의 자손이라는 당연한 상식을 비로소 실감케 한다. 늘 먹어도 질릴 수 없는 슴슴하고 고담한 맛, 순결한 부드러움이 입안에서 뭉그러진다. 할머니의 저 먼 할머니 시절부터 만들어왔던 의젓하고 예스러운 맛이 아닐 수 없다.
한편 두부전골은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자아내는데, 여기에는 새우나 게와 같은 갑각류 등속이 한몫한다. 김장철에 유난히 몸값이 높은 백하(白蝦)가 잔뜩 흩뿌려져있는데, 탕이 끓어오르면 붉은빛으로 돌변하며 다디단 육수를 왈칵 뱉어낸다. 바다와 밭의 재료가 만나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것이 이 전골의 일미이다. 또한 섬 음식 중에서도 한결같이 맛있는 살진 바다취 역시 함께 내주는데 찬 중에는 가위 으뜸이라 할만하겠다. 다만, 행여 독자들이 이곳을 방문할 생각이라면, 주민들을 위한 '협동조합'이니 한창 바쁜 시간은 넌지시 피하시길 권한다. 부녀회가 살뜰히 맞아주지만, 어디까지나 객(客)은 객일 뿐이니 집밥 맛을 보려 한다면 그 정도의 눈치와 센스는 챙겨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두부를 접하려면, 운이 좀 필요한 셈이다.
혜림원, 장애를 가진 이들이 꾸리는 열린 공간
기실 이 두부를 맛보기 전에 섬에서 우리를 가장 먼저 반겨준 이들은 '혜림원' 사람들이었다. 혜림원은 장애를 가진 이들이 꾸려가는 시설인데, 규모도 크거니와 빼어나고 아름다운 조경이 마치 별세계와도 같았다. 하지만 이런 이상적인 시설을 볼 때면 마음 한켠을 지그시 누르는 장면이 생각난다. 가령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 나오는 소록도의 모습이 그것이다. 한센병 환자들이 반강제로 이주당하여 만든 소록도 한센인촌은 섬이라는 폐색된 공간 안에서 이상적인 낙원 만들기를 꿈꾸다가 결국 곪을 대로 곪아 지옥도로 돌변하는 모습이 펼쳐진다. 인위적인 낙원을 만들겠다는 헛된 욕망과, 나가지 못하는 섬이 지니는 환경은 겉보기에는 아름다울 수 있어도 그 속살에는 무시무시한 통제의 가시 사슬이 깊숙이 박혀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방문한 혜림원도 본디 부천시에 소재하였지만, 차별의 시선으로 결국 이 장봉도까지 와서 분원을 낸 것이다. 하지만, 혜림원은 적어도 <당신들의 천국>에 나오는 그런 헛된 욕망이 꿈틀대는 곳은 아니었다. 그것은 혜림원이 추구하는 목표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혜림원은 이곳 사람들이 여기서 늘 안전하게 머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로 복귀하여 일반적이고 평범한 삶을 꾸리는 것을 추구한다. 그래서인지, 혜림원 사람들은 우리를 마치 이웃이나 되는 양, 방에 초대하여 삶의 속살을 살짝 보여주었다. 자립의 마음이 혜림원의 기둥이고 대들보이니, 장봉도는 사람을 가두는 절도(絶島)가 아니라, 바다로도 뭍으로도 활짝 열린 섬인 셈이다.
작은 모시조개탕 한 종지에 담긴 마음
나는 바로 이 자립의 마음, 그리고 그 자립을 위하여 서로 돕고 사는 마음이야말로 장봉도 음식이 지닌 진짜 양념이 아닐까 싶었다. 두부 역시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봉양하는 마음으로 만든 것이니 더 설명할 필요도 없겠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마음씨를 섬을 떠나기 직전 먹었던 한 종지 모시조개탕에서도 맛볼 수 있었다. 비록 두부가 섬의 속살과도 같은 맛이라지만, 그래도 장봉도의 소라가 유명하니, 소라 무침 한 접시는 꼭 먹고 나가자고 투합하였다. 그래서 선착장 근처의 음식점에 들어가 소라 무침을 시켰는데, 고소한 기름과 소라 내장 특유의 향기가 버무려져 간단한 안주로 전혀 손색이 없는 맛이었다. 다만 음식을 내주는 젊은 사장은 그다지 살가운 성격 같이는 보이지 않았다. 음식에 대한 설명은 친절하지만, 그 표정에는 조금 수줍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되뚝해보이는 속칭 '상남자' 다운 모습이 역력하였다.
우리는 가끔 섬사람들이 배타적이고, 뭍사람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고 속없는 소리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섬사람들의 마음이란 아마도 혜림원 사람들이나 젊은 주인의 마음과도 같지 않을까? 섬에서 생활하려면, 남에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자립의 마음이 필요하고, 그러면서도 서로를 섬기고 도울 수 있는 공동체 의식 또한 필요할 것이다. 뭍에서 온 사람들이 그 자립심과 유대감을 오해하여 살갑지 않다고 말한다면, 이는 얼마나 철없는 소리란 말인가. 오늘 장봉도에서 차려준 밥상은 말 그대로 수줍지만 있는 그대로의 섬의 속살을 살짝 맛본 것이 아닐까 한다. 겨우 유람객인데, 유람객으로 대해 주지 않아 고마웠고, 무엇보다 자립심과 서로의 배려로 만든 이 성숙하고 씩씩한 음식을 대하니, 여행객의 애수 따위 사치스럽고 우습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여객선이 뉘엿거리는 낙조를 가르며 달려도 결코 쓸쓸할 틈을 허락하지 않은 밥상이 장봉도에는 늘 차려져 있다.
출처 : 인천일보(https://www.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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