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봉혜림원을 찾아서 ... (1997. 3. 29. 격월건지 "작지만 큰 사랑" 기사) > 언론속의 혜림원

본문 바로가기

언론속의 혜림원

home > 지식과 정보나눔 > 언론속의 혜림원
언론속의 혜림원

장봉혜림원을 찾아서 ... (1997. 3. 29. 격월건지 "작지만 큰 사랑" 기사)

페이지 정보

작성 이선미 작성일2006-02-08 11:10 조회7,973회 댓글0건

본문

□ 1997. 03. 29

 격월간지 “작지만 큰사랑” 제2호 / 32~34면

  장봉혜림원을 찾아서.......

인천 월미도 부두에서 영종도 삼목뱃터로,
그리고 삼목뱃터에서 다시 장봉도로 약1시간 40분정도의 거리.
그곳에 위치해 있는 장봉혜림재할원으로 우리 자원봉사센터 직원들은 탐방을 겸한 봉사활동을 계획하였다.

약 천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한다는 장봉도의 형상은 마치 바나나처럼 길쭉하고 그 폭이 매우 좁아 섬의 끝과 끝이 육안으로도 보일정도 이다. 또한 마을에 단 2개의 식료품 가게만 있다니 화려한 도시 생활과는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 곳인지 짐작할 만하다.

장봉도 뱃터에서 차를 타고 3-4분만 가면 목적지인 혜림재활원에 도착한다. 혜림재활원은 성인지체장애인 시설로서 1985년 6월 18일에 개원하였으며 같이 운영되고 있는 혜림학교는 86년에 문을 열었다.

현재는 임성만 원장님을 비롯하여 직원30여명과 성인지체장애인 100명이 생활하고 있으며, 장애인들의 장애유형은 정신지체장애인으로서 의사소통 및 신변의 처리가 불가능한 중증장애에서 의사소통 및 사회적 재활욕구가 거의 일반인에 가까운 경증장애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그리고 나이도 만 18세부터 50세 정도로 천차만별이다.

센터 봉고차를 타고 도착하자 차 주위에는 새로운 이방인들을 반기는 장애인들이 가득했다. 차에서 내리는 직원마다 꼭껴안거나 두 손을 꼭 잡으며 나이가 어린 우리들을 ‘형’. ‘누나’라고 부르며 반겼다.

장봉혜림원의 총무님과 자원봉사담당자분이 시설과 장애인들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유의사항에 대해 설명하셨다.

“여기의 장애인들은 성인들이기 때문에 함부로 반말을 써서는 안됩니다.” 라고 당부하셨던 담당자 분의 말씀은 정신지체인도 성인으로서 존중되어져야 할 인격체라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장봉혜림원 직원들은 나이 많은 장애인들에게 “형” 혹은 “ㅇㅇ씨”라는 호칭을 붙이고 있었다.

1박 2일 동안 우리 4명 직원은 장애인들과 직원분이 식사를  마치고 난 뒤 식판과 숟가락. 젓가락을 씻어야하는 설거지 봉사, 걸레를 빨고 기숙실을 닦아야 하는 청소봉사. 장애인들을 깨끗이 씻겨주는 목욕봉사, 그리고 기숙실 운영보조 봉사 등을 수행하였다. 그중 가정에서의 봉사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데, 그 시간만큼은 장애인들과 함께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고, 그 시간을 통하여 그들과 많은 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디서 왔어?”

“어디서 살어?”

“몇 살이야?”

“남자친구는 있어?” …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들.

그리고 자신들에 대한 두서없는 이야기들.

 “저희 형이요. 암에 걸려서요. 얼마 안 있으면요 죽는데요. 우리 형이 죽지 않고 저 한테 맛있는 것 사줬으면 좋겠어요 ” 더듬거리며 눈이 빨개져 눈물을 글썽거리던 원제씨.

“저 조금만 있으며 그룹홈 나가요. 나가면요. 취직도 하고요 장가도 갈꺼예요” 라며 2년 뒤엔 혜림학교에서 졸업한다는 원학씨. 2년이라는 세월은 그분에게는 무척이나 짧은 시간인가보다. 나가면 여자친구도 있고 결혼할 사람도 있다며 천친하게 웃는다.

어떤 분은 편지를 쓰겠다며 우리의 직원에게 주소를 열심히 내민다. 그리고 답장할 거라며 몇 번이나 확인하며, 주소를 옮겨쓴 조그마한 종이 조각을 주머니에서 끄내 내 눈앞에 드리내밀기도 했다.

물론 이 정도의 대화나 반응마저 보이지 못하는 장애인들도 많이 있었다. 그냥 혼자 구석에 앉아서 종이를 접었다 찢었다 하는 이들도 있었고, 식당으로 달려들어와 오징어포를 입 한 가득 집어넣는 자폐증세를 보이는 장애인도 있었다.

하지만 혜림재활원에서는 그 어떤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들 개개인의 소망과 행복을 소중히 하고 그들이 사회의 평범한 우리 이웃이 될 수 있도록 애쓰고 있는 듯 했다.

장애 경감 및 극복을 위해 의료재활서비스와 개개인들의 학습능력 및 사회적응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특수교육을 실시하고 있고, 정서안정과 전인적 인격 형성을 위해 신앙지도, 리듬합주단, 축구부, 핸드벨 연주 등의 활동과 소풍, 수학여행, 현장학습 등 다양한 행사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특히 장애인들의 사회복귀 및 통합을 위한 사업과 직업알선, 결혼, 퇴원원생 사후지도, 그리고 장애인 공동가정의 운영에도 힘을 쓰고 있다고 한다.

현재 장봉혜림재활원은 600여명의 후원회원들의 후원금에 의해 이 보금자리를 지켜가고 있다. 그러나 도서지역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자원봉사자나 대학 동아리의 발길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시설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몇 백만원. 몇 천만원의 일회적인 후원보다도, 단돈 천원을 후원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주시는 후원자가 훨씬 더 감사하답니다.” 라고 혜림원의 직원은 말한다. 


1박2일 동안의 짧았던 봉사활동을 마치고

“저 누나 집에서 잘꺼예요 알았죠?”라며 졸라대던 장애인을 뒤로하고 떠나야 했던 우리들은

마치 정든 집을 떠나는 것 처럼 섭섭함을 느꼈다.

그래도 우리 장애친구들이 우리를 금방 잊을지라도, 우리는 항상 그들의 웃음과 거짓 없는 마음을 간직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몬센터 사회복지사 김혜수 >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