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장봉혜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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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가희 작성일24-10-03 11:23 조회11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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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장봉혜림원
봉사자 이가희
15년 전, 열여덟. 슬슬 더워질 듯한 계절. 친구의 권유로 교보생명 더불어 행복하기 청소년 봉사캠프에 신청했다. 17대1이나 하는 경쟁률에 설마 될까? 하는 마음으로. 예나 지금이나 뽑기나 당첨에는 운이 없는데 신기하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2009년 여름방학, 처음 장봉혜림원을 만나게 되었다. 첫 만남의 어색함과 긴장감이 무색하게 2박 3일이 지나고 섬을 나올 때는 아쉬움의 눈물을 훔쳤다.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고3 수능이 끝난 연말에 가장 친한 친구와 둘이서 지하철, 버스, 배를 타고 혜림원에 들어가 당일치기 봉사활동을 했다. 마지막 배를 타고 나왔는데 집에 돌아갈 버스가 오지 않아 추운 겨울날 발을 동동 굴렀던 때가 생각이 난다. (다행히 어찌어찌 집에 잘 돌아왔다.)
스무 살, 대학생이 되었다. 교보 캠프 이후로 계속 연락하며 지냈던 선생님께서 우리 대학 내 장애인 봉사동아리 '인간회복'을 적극적으로 추천해 주셨다. 마침 우리 학과에 인간회복 부회장, 총무 언니들이 있었다. 운명처럼 인간회복에 들어갔고, 사랑받는 새내기가 되었다. 인간회복을 통해 만난 장봉혜림원은 또 새로웠다. 2번의 방학 때마다 5박 6일 동안 살다 나오곤 했는데 매번 그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육지로 나오면 이상한 세상 같았다. 그때 나는 천국은 아마 장봉혜림원 같은 곳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솔직하고 순수한, 모두가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 같은 곳. 서로 가족처럼 살아가는 곳. 평안함이 있는 곳. 천국의 그림자 같은 곳이었다. 학기 중에는 가끔 주말에 그룹홈에 가서 청소를 하고 외부 활동에 동행을 했었다. 영화관에 가서 함께 영화를 보고 햄버거를 먹었던 추억도 있다. 인간회복이 지금은 비록 없어졌지만, 그 이름아래 수많은 선배와 후배들이 장봉혜림원을 기억할 것이고 이용자분들과 복지사 선생님들을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느리게, 또 빠르게 흘러서 나는 서른세 살, 한 남자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이따금 혜림원이 생각이 났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계기를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우리 교회 30대 모임(조각목)에서 2024년에는 봉사하는 모임이 되어보자 했고, 장봉혜림원을 적극 추천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장봉혜림원에 지난 7월 다녀왔다. 오랜만에 만난 장봉혜림원은 또 새로웠다. 예전보다 조용하고 차분했다. 나 혼자만의 반가움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낯익은 얼굴들이 가끔 보였다. 조각목은 장애인봉사활동이 낯설다 걱정했지만, 더운 날씨에도 열심히 해주었다.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자연에서 놀았다.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영상에서 이용자분들이 자립하는 과정을 보며 우리가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고, 한 마을 같은 장봉혜림원의 존재를 귀하게 느끼며 또 오자 이야기했다.
그때는 삼촌, 이모라 불렀던 이용자분들이 대부분 육지로 나가셔서 생활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을 때, 반가운 내 이웃이었다. 나에겐 삼촌, 이모인 분들의 집에 놀러 가고 싶었다. 이렇게 이어져 온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다음을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도 인연이 이어져 좋은 이웃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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